ⓒ 박해윤 기자
#사례1. 고양시에 있는 (주)베트올은 종업원 9명의 조그마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의 눈물이나 분비물을 채취해 질병 유무를 2~10분 이내에 빨리 알려주는 신속진단키트를 지난해 개발했다. 이제까지 나와 있는 제품에 비해 사용방법이 간단하고, 즉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에도 올랐다.
(주)베트올은 약학박사인 김정미(45) 대표가 2006년 말 설립한 벤처회사. 창립 2년 만에 ‘5년 안에 세계 5위 안에 들 차세대 세계일류상품 생산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신속진단키트 개발비용은 1억5천만원으로 이중에서 경기도가 6천만원을 지원했다. 베트올은 현재 자체개발한 진단키트를 76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게 된 게 세계적인 추세예요. 애완동물이란 말 대신 반려동물이란 말을 쓸 정도죠. 인간 질병과 관련된 사업은 경쟁이 심해 마진이 적지만, 동물 질병사업은 세계적으로 커 나가는 분야이니까요.”
애완동물 질병 진단키트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2억8300만 달러로, 그 규모가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블루오션이다. 미국이 약 80%를 생산하고, 우리나라는 60만 달러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이다. 베트올은 올해 상반기에 이 제품으로 6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2013년까지 1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주)베트올의 목표는 우선 글로벌 5위 회사 안에 진입하는 것. 그 다음은 세계 최고의 반려동물 질병진단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반려동물도 수명이 늘어나면서 당뇨, 비만, 관절염, 암 등에 걸리는 동물들이 많은데, 이를 진단하는 키트를 연구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사례2. 바쁜 하루 일상을 마감하고 잠자리에 든 A씨. 그런데 깜빡 잊고 안방 전등을 끄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다시 일어나 전등을 끄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순간 A씨는 누워서 말하기만 해도 전등이 꺼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부천시의 중소기업인 한국파워보이스가 A씨의 이런 생각을 현실화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제품은‘안방 불꺼` ‘안방 불켜’ 같은 음성명령으로 전등을 끄거나 켤 수 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고 지역별로 사투리가 있지만 이 전등 스위치는 모두 인식할 수 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TV 방송음 같은 가정 내 소음에도 오작동이 없으며 6m 이상의 먼 거리에서도 음성 명령어를 인식할 수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특히 신축 아파트뿐 아니라 기존 주택에도 별도의 전원 배선 공사 없이 스위치만 교체해 사용하면 된다. 한국파워보이스는 내수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영어·중국어·일본어로 작동(제어)되는 제품도 개발해 내년 상반기쯤 출시할 계획이다. 정희석 한국파워보이스 대표는 “그동안 손뼉으로 전등을 켜거나 끄고 음성으로 전등을 제어하는 제품들이 출시된 적이 있지만 실제 환경에서 오작동이 잦아 성공하지 못했다”며 “실제 환경에서 버튼을 사용하지 않는 버튼리스(Button-less) 방식의 음성인식 기술을 적용한 전등 스위치를 개발해 상용화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음성인식 기술은 곧 자동차 내비게이션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자동차 운행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잡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자의 목소리를 인식하는 기술이 키포인트로, 한국파워보이스는 지난 10여년간 음성인식 및 화자인식 분야에 연구를 집중해 왔다.
이 기술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2억원, 이중에서 경기도가 8천만원을 지원했다. 한국파워보이스는 앞으로 3년간 4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자체 처음으로 사기업 기술개발 지원
기업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일은 이제까지 정부의 몫이었다. 그런데 경기도가 지난 2008년 지자체로서는 최초로 사기업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무작업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맡고 있는데, 2008년 178억원, 2009년 230억원, 그리고 올해는 193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도내 220여개의 중소·중견기업이 혜택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37개의 과제가 성공사례로 기록됐다.
경기바이오센터 입구. ⓒ 박해윤 기자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경기개발연구원 산하 경기과학기술센터와 경기바이오센터를 통합해 지난 5월 새로 발족한 기관이다. 경기도의 과학기술정책 연구 및 지원, 경기도 기술개발사업 진행, 제약 바이오 분야기술 및 네트워크 지원과 육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다. 쉽게 말해 경기도 내 중소기업의 산학연 컨소시엄을 지원하고, 바이오기업에 정보와 기술을 제공하는 게 주요 업무이다.
경기도 산하 과학기술기관은 지금까지 경기과학기술센터와 경기바이오센터의 두 기관뿐이었다. 그런데 두 기관 모두 인원이 30명 정도의 고만고만한 규모였다. 두 기관을 합치면 행정인력을 줄일 수 있고, 시너지효과도 기대했기 때문이다. 또 이제까지 공무원이 담당하던 경기도의 과학정책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새로 맡게 됐다. 현재 진흥원에는 연구인력 20명 외 40명이 사업관리와 장비관리를 맡고 있다. 그 외 부설기관인 의약연구센터에 30명이 일하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지원하는 바이오센터는 전국에 약 20개가 있다. 그런데 경기바이오센터는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로 정부지원이 전혀 없다. 경기도가 지원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경기바이오센터에는 고가의 전자현미경 등 각종 측정 장비와 약효검사 장비가 있다. 장비 하나가 5억원이 넘으므로 개별 기업이 이런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다. 필요할 때마다 바이오센터에 와서 쓰면 되는 것이다. 현재 바이오센터에는 명문제약, 현대약품 등 27개 바이오업체가 입주해 장비를 상시 활용하고 있다.
경기바이오센터 시료 전처리실 모습. ⓒ 박해윤 기자
바이오센터를 이용하는 업체는 90%가 제약업체이다. 그런데 제약업체는 성과가 오래 걸린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보통 10년 걸린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일에 뛰어든 것이 10년쯤 된다. 성과가 나올 시기가 된 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신약은 20개쯤 된다. 상업화에 성공한 경우는 7,8개 정도. 나머지는 다국적기업에서 사들여 죽이기도 했다.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진흥원이 계획하고 있는 사업 중에는 광교신도시-판교-과천으로 이어지는 소프트웨어 벨트를 구성하는 일도 있다. 서울의 구로 디지털밸리처럼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에 있는 게임 또는 모바일업체를 유치하고, 새로 생기는 기업을 지원하는 일이 주임무이다. 서울 구로의 경우 임대료가 초창기에는 평당 2백~3백만원이었으나, 지금은 6백만원쯤 된다. 한푼이 아쉬운 중소기업으로서는 싼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데, 이 업체들을 광교나 판교로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지식서비스산업은 수도권을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경기도로 유치하는 게 맞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쓰므로 고용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의 산업은 모방에서 출발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제품을 베끼다가 최근에는 LCD,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반면에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제품도 있어 기업간, 산업간 격차가 많은 편이다. 대기업의 기술수준은 상당한 반면에 대학의 연구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중소기업의 독자기술 개발은 더욱 어렵다. 그런데 정부는 기초과학이나 거대기술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 지원은 지자체가 지원할 수밖에 없는데, 경기도의 경우 진흥원이 그 일을 떠맡은 것이다. 이원영 원장은“기술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며, 독창적인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석·박사는 미국에서 경제학으로 땄다. 이공계 출신이 경제학박사가 된 것인데, 그는 이에 대해 물리학과에 들어가 보니 맨날 한국에서 첫 노벨상은 물리학자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등‘노벨상 타령’에 질려 흥미를 잃었다고 한다. 실제로 물리학과 출신 중에서 절반은 타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땄다고 한다.
ⓒ 박해윤 기자
청와대 비서관 거친 기술경제학자
그의 첫 직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었다. 사공일 당시 KDI 부원장의 권유로 들어갔는데,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 김중수 한은 총재, 이주호 교과부장관 내정자 등이 그때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이다.
KDI에서 10년을 일한 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다시 10년을 일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으로 1년 7개월간 있었다. 청와대에 발탁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른다고 했다. 대통령 모시고 과학기술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연설문 써드리는 정도여서 바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2003년부터는 초빙교수로 서울대 공대 기술경영대학원에서‘공학기술과 경제’라는 강좌를 맡았다. 기술경영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뿐 아니라 서울대 모든 학부 학생과 대학원생에게 개방되었는데, 전공자보다 비전공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기술혁신을 경제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게 학생들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였던 모양이다.
좌승희 박사가 경기개발연구원을 맡은 2006년 6월, 그는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된다. 경기도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이다. 경발연 연구위원으로 김문수 지사의 과학기술 자문위원을 겸했다. 그리고 그때 김 지사에게 경기도 내 R&D(연구개발)사업을 제안한다.
애초에는 500억원 지원을 목표했으나, 실무검토 단계와 도의회 심의과정에서 대폭 깎이기도 했다. 정부에서 예산 받아 투자하면 될 것을 굳이 지자체에서 R&D투자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였다. 그래도 김 지사가 뚝심으로 밀어붙여 추경에서 170억원을 따냈다. 중앙정부는 지역사정을 잘 몰라 전략산업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중앙정부 자금이 아닌 경기도민 세금으로, 지자체로서는 최초로 자체 전략산업 연구개발 투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이중 100억원은 도가 집중적으로 육성할 전략산업에, 70억원은 기업주도 기술개발사업에 투자됐다.
이 원장은 도의 정책 우선순위는 도민의 지지에 따라 좌우되므로, 도민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미래지향적 투자임을 알아주시라는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