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이 질병에 걸렸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진단키트를 생산해 수출하는 베트올의 김정미 대표(48)는 지난 3년간 비행기로 30시간이 넘게 걸리는 중남미를 옆집 드나들 듯했다. ‘자고 일어나면 동물병원이 하나씩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지식경제부로부터 ‘차세대 세계일류상품(향후 5년 안에 세계 5위에 진입 가능한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품질에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높은 진입장벽이었다. 1000페이지에 이르는 요구서류를 다 준비해도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면 새 서류를 달라고 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바이어들에게 제품경쟁력과 신뢰를 주며 끈질기게 도전했고, 지난해 말 브라질과 콜롬비아 우루과이 파나마에서 판매 허가를 따냈다.

3년간의 노력은 글로벌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올해 결실을 맺었다. 신흥시장에서의 판매가 본격화하며 올해 145만달러의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남미 주요 시장 점유율은 미국계 다국적기업 아이덱스에 이어 2위다. 김 대표는 “신흥 시장은 개척이 힘들어도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두 자릿수 성장이 보장되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 신흥 시장을 개척해온 국내 중소기업들이 불황 속에 약진하고 있다. 신흥시장은 진입에 까다로워도 성장 속도가 빨라 불황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서다. 우리나라가 올해 무역 1조달러를 또다시 달성하며 사상 첫 세계 무역 8강에 진입하게 된 것도 ‘기피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중견·중소기업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다.

배터리와 타이어 등 자동차 재생부품을 수출하는 캠버리통상 역시 남들이 안 가는 시장을 공략해 올해 수출이 2배 늘었다. 이 회사는 1989년 섬유산업으로 시작해 1991년 1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하다가 IMF 외환위기와 섬유산업의 쇠퇴로 2006년 폐업했다. 이계복 대표(57)는 “사람이 있으면 자동차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2008년 자동차부품에 재도전했고, 기피시장 위주로 판매망을 넓혔다. 이라크 오만 예멘 등 중동과 수단 가나 리비아 등 아프리카,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CIS(독립국가연합)가 주력 시장이다. 올해 300만달러를 수출했다.

2008년 발생한 환헤지옵션상품 키코(KIKO) 사태로 폐업 문턱까지 갔던 볼밸브 생산업체 금강밸브는 중동시장을 공략했다. 1983년 독일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2004년 1000만달러, 2006년 2000만달러, 2007년 3000만달러를 수출했으나 키코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김지혜 대표(57)는 중동 등 신시장을 개척해 지난해 초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배 급증한 5404만달러가량을 수출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